하늘꽃향기 자연치유명상센터
 
 
 


|  2  | 1/1     
돌멩이 

상담과 치유에 관한 멋진 글을 올립니다.

영적 보물창고의 문을 열기위한 열쇠

   라하샤 / 김경진('지금여기' 번역위원) 옮김  

독일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일반의로 8년간 일한 라하샤는
침술, 명상, 카운셀링, 프라이멀 테라피, 호흡, 최면, 에리스니안, 인카운터,
오라소마, 에소테릭 리딩, 에너지 워크 등을 연구해 치료에 접목해 왔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라하샤 코스를 미국, 캐나다, 유럽,
인도, 일본 등 전세계에 20년간 보급해 오고 있다.
그는 가슴으로부터의 상담은 인간 내면의 영적 보물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분리없는 하나를 체험함으로써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남을 역설한다.
라하샤는 지난 2000년 5월 미내사에 초청되어 '라하샤 카운셀링 스킬 코스'를 연바 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떤 존재든-식물이든 동물, 또는 사람이든- 간에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또한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고유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갈망이나 충동 및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의 경우, 이것은 자신의 꽃을 피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것은 씨앗이 자아를 포기한다는, 다시 말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연하디 연한 새싹이 햇빛을 찾아서 흙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변화무쌍한 날씨의 도전을 이겨내고서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려야 한다는 것들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에게도 이 생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식물의 예를 계속 활용하자면, 언제 어느 때든 새싹이 죽을 수도 있고, 거센 바람이나 홍수 또는 가뭄, 그 밖의 다른 재난들로 인해 뿌리가 뽑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갈망이나 충동 또는 본능적 욕구는 삶을 통해 경험되어지고 싶어하는 이같은 본질적 속성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인 오쇼(Osho-오쇼 라즈니쉬)가 강연을 통해 말하고 있듯이, 지구상의 식물계나 동물계는 이미 최대한으로 자신들의 실체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는 개로 태어나서 개로 살다가 개로 죽어갑니다. 즉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는 자신이 개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식물의 경우에도-그것이 장미든 연꽃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싹틔우고 성장하여 다만 자기 자신이 되게끔 예정되어 있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성장하는 가운데에서 우주와 또 세상 만물과 하나가 된 가운데 삶을 지속합니다. 진실로 그 어떤 동물이나 식물일지라도 분리를 경험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경우에는 이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점은 같지만, 일단 태어난 다음에는 모든 것-그 가능성을 유지하든, 더욱더 계발하든, 그 정수를 실현하든, 아니면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든…-이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린 것이 되어버립니다. 좁게는 자신의 가족이나 사회, 크게는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의 집단적인 사고의 지배를 받으며 자라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에 있어 그다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신경의 초점은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 쏠리게 됩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 되라!”는 말들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저 보다 더 갈고 닦인 개성을 창조하느라고 대부분의 생애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궁금하게 여겨 볼 기회도 못 가진 채 말입니다. 우리에게 다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이 되기’ 위해 쉴 새 없이 자신을 조절하다 보니, 우리는 분리라고 하는 아픈 경험들을 무수히 겪고 있는 동시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자기 실체로부터 스스로를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소원함이 세상에서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카운슬링은 이같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치유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치유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치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들을 만들어내었던 마음 속과 과거에 있었던 많은 오해들을 치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상처들은 우리 개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동시에 우리들 속에 가득 스며들어 있는 에너지장인 오라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처들은 그 근원이 이생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생들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의 패턴은 스스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계를 살펴보더라도, 고통의 패턴이 유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부모에게서 부모에게로, 자식에게로 또 손자들에게로… 이런 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버릇, 행동 양태,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움들, 사고 방식들조차도 아주 비슷하게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업(業, karma)’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자신을 조절하는 행위’의 바로 밑바닥에는 우리 자신의 본성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어떤 상황이나 교육 또는 어떤 성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생에서의 우리의 individuality(개성, 여기에서는 자신의 본연의 성격을 의미함), 가능성, 또는 목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오라소마(Aura Soma)는 아름다운 색깔들과 향기들과 더불어 우리 개성의 일부분인 본질적인 에너지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밸런스 바틀(Balance Bot-tle) 속에 들어있는 하나의 투사체로서, 이 에너지들은 우리에게 보여지고 인식될 수 있으며, 또한 원래의 위치인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을 환영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총체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우리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라소마의 아름다움은 바로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의 향기와 색깔이 담긴 병들을 자신의 실체의 한 반영으로서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라소마를 시술하는 사람의 역할은 단지 색깔의 언어와 병들 속에 담겨 있는 지혜를 당사자가 알기 쉽도록 해석해 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으로써 당사자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카운슬링 역시 마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운슬링은 고객이 personality(여기에서는 본성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혀진 겉으로 보이는 성격을 의미하고 있음)로부터 개성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학적 통찰력을 여기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생에서 걸치고 있는 신체와 마음-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움직이는 마음-의 표현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언어, 여러 가지 방법의 대화, 감정, 정서, 육체적 감각, 오감 등을 우리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보물창고의 문을 열기 위한 열쇠들로서 활용합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인간의 모든 감각적인 경험들 뒤에 실제로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를 발견한다고 하는 실로 커다란 발견을 할 수가 있습니다. 카운슬링을 행하는 카운슬러는 이미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에너지장을 만들어내어 그 안에서 고객이 공명을 할 수 있고 또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내가 부모와 사회로부터 답습한 성격 너머에 있는 내 본성은 과연 어떤 것인가?” 즉 “나의 실체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카운슬러는 고객이 이같은 질문을 추궁해 나가는 것을 돕습니다. 고객이 자신의 허울이 되는 성격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함에 따라, 카운슬러는 우리가 에센스(essence; 본질)라 부를 수 있는 것과 접촉을 합니다. 이 에센스(오라소마의 “Soul Bottle-소울 바틀”에 비길 수 있는)를 가지고 고객은 자기 개성이 가지고 있는 특정 요소와 특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그 꽃, 다시 말해서, 이생에서 자신이 피우도록 되어 있는 그 꽃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고객은 깨닫게 되어 어떤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헛된 노력을 멈출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장미꽃이 연꽃이 되고자 애쓰지 않고 한 송이 장미인 것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객은 자신이 이미 이루고 있는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축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에센스가 퍼스낼러티─즉, 허울만의 성격─나 그것의 변화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카운슬링은 고객이 이생의 삶의 여정에서 육체와 마음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포용하며, 또 기꺼워할 수 있도록 도울 수가 있습니다.

삶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대부분의 괴로움은 우리가 자기의 근원으로부터 분열 또는 분리되어 있거나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비롯됩니다. 또 괴로움은 우리가 밀쳐지고 당겨진다고 느끼며, 외부적인 힘들의 압력에 눌려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인의 입장이 아니라 노예의 입장에 처해 있으며, 외부 상황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희생물로 생각하거나 괴로움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은 일종의 오해일 뿐입니다. 이같은 오해는 자기 바깥의 대상들로부터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에너지를 외부로 유출시키는 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카운슬링은 고객으로 하여금 이 에너지의 방향을 돌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이 때 발생하는 이상한 현상은 그 순간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그것이 어떤 것이든(슬픔, 분노, 자포자기,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든 기쁨, 행복,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것이든) 간에─자신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는 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것을 다르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 없이, 어떤 변화에 대한 희망도 갖지 않은 채, 어떤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를 완전하게 경험하는 데에 따라서, 바로 그 경험은 아주 상쾌한 것이 됩니다. 바로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조금도 빠짐없이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 속에서는, 부정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사건조차도 즐거움으로 변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어째서 그런가요?

그것은 부정적인 경험에 속해 있는 고통이란 ‘벌어지는 일들은 저마다 달라야만 한다’고 하는 해석 속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생성되는 부산물은 기쁨, 사랑, 자신의 실체 속에서 느끼게 되는 안도감들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현상은 어떤 감정이나 정서, 또는 경험일지라도 그것과 하나가 되는 속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은 그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신비스러운 깨우침은 자신이 항상 바깥에서 찾아 헤매던 것들-행복이나 기쁨, 평화, 사랑, 자유와 같은-이 이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재발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찾아 헤매거나 추구하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예를 들어, 돈이나 저택, 고급 승용차, 더 사랑스러운 배우자 등─은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행복이나 기쁨, 평화, 사랑, 자유와 같은 것에 대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갈망이란 ‘온전한 하나(oneness)’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충족시키려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기꺼이 자신의 내면으로 고개를 돌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결코 그 온전한 하나로부터 떨어져 나온 적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카운슬링과 오라소마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치유 기법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시도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오라소마의 색깔들 속에서, 고객은 ‘이것이 바로 나의 실체구나.’ 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식 속에서 안도감이 생길 수 있으며, 색깔 속에 반영되어 있거나 자신이 그동안 거부해 왔던 에너지를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따뜻한 환영 속에서 치유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온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됨으로 인한 부산물이 기쁨이요, 사랑이며 지복과 평화입니다.

카운슬링을 하는 과정에서, 카운슬러가 고객이 단순히─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없이─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것을 도와줄 때, 하나가 된다고 하는, 위에서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는 카운슬러가 고객이 자신의 실체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줌에 따라서, 실체와 ‘싸우는’ 일에 묶여 있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발견한 자신들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우리의 실체들과 싸우는 데에 허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내면에서 적대시하여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든 것이 바깥 세상에도 역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바깥에서도 또한 똑같은 것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싸움을 멈추고 온전함 속에서 실체를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지고한 사랑과 포용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모든 경험 체계가 변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세상과의 싸움도 멈추게 됩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찬 것으로, 온 세상이 꽃밭으로 변한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카운슬링이란 고객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을 단순히 지원하고 돕는 행위입니다. 여기에는 고객 내면의 그 어떤 것도 바꾸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설혹 고객이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하더라도 말입니다. 내면의 어떤 것을 바꾸고 싶어한다고 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와 변환은 자신의 실체와 다르기를 바라는 것을 멈추고, 실체를 인식하고 실체로서 삶을 살며, 그 속에서 안도를 느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위와 같은 내용은 나무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나뭇잎 하나가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하면 그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나뭇잎이 다른 나뭇잎의 생김새가 마땅치 않아 그것을 바꾸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위의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에너지는 나무 자체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나뭇잎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오해가 되겠지요. 사람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것도 이와 똑같은 오해인 것입니다.

나무의 이파리가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물들의 존재감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나무의 일부임과 나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나무는 이미 이파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존재하면서 삶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 축하 내용의 일부분을 그 이파리와 다른 잎들이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면서 이파리가 느꼈던 불행은 행복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식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존재라고 하는 커다란 나무의 이파리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존재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들과도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만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 우리는 항상 자신들과 싸우고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산다는 것이 아주 우스꽝스러운 노릇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그저 돕고 싶은 마음만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때마다 우리 스스로를 돕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카운슬링이라는 기술은 그와 같은 도움을 주기 위한 열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한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는 보물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skyflower
정성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_^ 2003/11/18
(15:28:29)

 Delete


NAME
PASSWORD
COMMENT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정보를 나누는 란입니다.

skyflower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ZZONGA
 
Copylight ⓒ 2004~2005 Skyflower - All rights reserved 서울 강북구 수유동 560-47 세현빌라 401호 하늘꽃향기 자연치유명상센터 02)998-6866